조선 청백리 두사순·왜적 격퇴 두정란 묘역, 군산향토유산 지정
■조선 청백리 두사순·왜적 격퇴 두정란 묘역, 군산향토유산 지정
전북 군산시는 옥구읍 오곡리에 있는 '두사순 현감 및 두정란 장군 묘역'을 2019년 11월 7일 향토문화유산 제21호로 지정했다. 두사순(1525∼1587)은 조선 전기 무인으로 충청도 비인 현감 등으로 재직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청백리다.그의 묘역은 봉분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비석도 340년 전에 세워져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군산시는 설명했다.
두정란(1550∼1592)은 임진왜란 당시 웅치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묘역이 조성된 지 422년이나 됐고 묘비는 웅치전투 연구의 중요 사료이다. 향토문화유산이란 국가 또는 도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예술·학술·경관 가치가 큰 유적, 민속자료, 명승지 등을 말한다.
<참조> 연합뉴스, 매일경제, 전북일보
■ 두사순[ 杜思順 ]
정의: 조선 전기 군산[옛 옥구현] 지역 출신의 무관.
개설:
두사순은 군산 지역에 세거한 두릉 두씨 가문 출신으로 비인 현감과 강령 현감으로 있을 때에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
가계
두사순(杜思順)은 두릉 두씨 시조 두경령(杜慶寧)의 14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군산에 세거한 두릉 두씨 옥구 입향조 두승손(杜承孫)이며, 할아버지는 효행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중종 연간에 효자 정려가 세워진 두세준(杜世俊)이다. 아버지는 선무랑을 지낸 두헌(杜憲)이다. 외할아버지는 평택 현감을 지낸 이성수(李成壽)이고, 장인은 김경림(金敬林)이며, 두 번째 부인의 아버지는 부장(部將)을 지낸 윤립(尹岦)이다. 아들 두정란(杜廷蘭), 두정협(杜廷莢)은 임진왜란 때 조헌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활동 사항
두사순은 1525년(중종 20)에 태어나 1587년(선조 20)에 사망하였다. 무공(武功)을 세워 입신(立身)하였으며, 관직으로는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 사도진 수군 첨절제사 등을 지냈다.
1577년(선조 10), 비인 현감(庇仁縣監)으로 있을 때 어질고 바르게 일을 처리하므로, 비인현 사람들이 청백 선정비를 세우고 청백리라고 칭송하였다.1580년(선조 13), 강령 현감(康翎縣監)으로 있을 때에는 흉년을 당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고을 백성들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당시 강령현 고을 사람들이 ‘옛날 한나라 때에 정치를 잘하여 두모(杜母)라는 칭호를 얻은 두시(杜詩)라는 분이 있었는데, 지금 사순공(思順公)도 정치를 잘하여 두부(杜父)라고 호칭하네.’라는 노래를 지어 선정(善政)을 칭송하였다.
1924년에 간행된 『옥구 군지(沃溝郡誌)』 사환(仕宦) 조(條)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신장리]에 있다.
참고문헌
『옥구 군지』(옥구 향교, 1924)
『두릉 두씨 세보』(1986)
『옥구 군지』(옥구 군지 편찬 위원회, 1990)
『전라 문화의 맥과 전북 인물』(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 1990)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사순 [杜思順]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두정란[ 杜廷蘭 ]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옥구현] 지역 출신의 무관.
개설
두정란(杜廷蘭)은 조선 시대 군산 지역에 세거한 두릉 두씨 가문 출신으로 임진왜란 직전에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킴에 충정을 다하였으며, 조헌과 함께 금산(錦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가계
두정란은 조선 시대 옥구현에 세거한 두릉 두씨 가문 출신으로, 두릉 두씨 시조 두경령(杜慶寧)의 15세손이고, 옥구 입향조 두승손(杜承孫)의 현손이다. 효행이 뛰어나 정부에서 정려를 내린 두세준(杜世俊)의 증손이고, 어모장군 선무랑을 지낸 두헌(杜憲)의 손자이며, 현감을 지낸 두사순(杜思順)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는 김경림(金敬林)[본관은 광산] 또는 부장(部將)을 지낸 윤욱(尹岦)[본관은 파평]이고, 장인은 윤몽룡(尹夢龍)[본관은 파평]이다.
활동 사항
두정란의 호(號)는 수의당(守義堂)이며,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1587년(선조 20)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위한 충정을 불태우며, 주변 사람들에게 일본군과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하였다.
1592년(선조 25) 7월~8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일본군이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금산성(錦山城)을 점령하고 세력을 크게 떨치고 있을 때에 권율 장군과 함께 이치(梨峙)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뒤에 스승 조헌과 합류하여,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금산성을 탈환하기 위해 힘껏 싸우다가 참전한 모든 병사와 함께 전사하였다. 이 때 훈련원(訓練院) 봉사(奉事)를 거쳐 부장(副將)을 지낸 동생 두정협(杜廷莢)도 함께 전사하였는데, 전사한 조헌 등의 의병 무덤을 ‘금산 칠백 의총(錦山七百義塚)’이라고 한다.
이후 후손들이 초혼(招魂)의 장례를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에서 지내고 장군석을 세웠다. 1924년에 간행된 『옥구 군지(沃溝郡誌)』 절의(節義) 조(條)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에서 초혼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금곡사(金谷祠)와 옥산 서원(玉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옥구 군지』(옥구 향교, 1924)
『옥구 군지』(옥구 군지 편찬 위원회, 1990)
『전라 문화의 맥과 전북 인물』(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 1990)
『두릉 두씨 세보』(1986)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정란 [杜廷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댓글